2010년 2월 20일 토요일

오드아이 맴.(2)

오드아이 맴.(2)

 

 

삐삐 삐삐 아침이 열렸네~ 아침이 열렷네.~ 삐삐 삐삐... 잠결에 들리는 내 자명종의 어설픈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떳다. 아침이군. 일단 커텐을 거두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싸늘한 아침 공기가 방에 가득찼을때 나는 창문을 닫고 거실로 내려갔다. 아 내방은 이층에 있다. ´오늘부터 엄마랑 아빠는 해외근무니까. 미안하지만 밥은 알아서 해결! 돈은 서랍에 있어. 사랑한다. -엄마가-´ 식탁에는 이런 쪽지랑 아침밥이 차려져있었다. 또 어디론가 가셨군. 내 부모님은 외교관이시다. 그래서 나는 외국인을 만나기 싫어도 만날수 밖에 없는 사람인것이다. 부모님이 외교관이라고 어느집 도련님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런 녀석들은 정말 이상한 놈들이다. 내 주위에도 없는건 아니지만 가끔 공적인 자리에서 마주칠때는 어쩔수 없이 어울려 주지만 속에서는 열심히 그녀석들의 욕을 하고있는 나이다. 밥을 먹고 교복을 입은후 나는 문앞에 나와 혜민이를 기다렸다. 대부분 이런 겨우 여자가 먼저 나와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상식은 이녀석에게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나도 여자 남자 하며 이것저것 구별하는 성격은 아니다. 한 5분쯤뒤 혜민이가 아직 잠이 들깬 얼굴로 나와서 안녕 이라고 인사를 건냈다.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이때의 얼굴이 가장 귀엽다.
우리 학교는 현립고교로 야트막한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도 이 지역에서는 최고의 진학률을 자랑한다는 것을 일단은 밝혀두는 바이다. 언덕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이 학교 학생들은 아침마다 등산하는 기분을 맞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학교 써클에 그 흔한 등산부나 산림욕부가 없는 것은 우리들의 기분을 잘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지만 남녀 공학이라고 해도 반은 철저하게 남녀로 구분되어있다. 다른 고등학교와 비교해 딱히 다른 점이 있는건 아니지만 우리 학교는 높은 진학률과 함께 유명한 것들이 있다. 일단은 진학률과 외국의 고교파티같은 현립제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늦지 않게 교실에 들어가 목도리를 풀고 자리에 앉자 마자 책상에 누워버렸다. 딱히 친한 녀석들도 없고 아침은 특히 나에겐 기운빠지는 시간대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잠과의 싸움에 열중하느라 놓쳐버린 수업은 그다지 나에게 중요하다고 와닸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 고 2기에 느낌는 불안감은 가끔씩 나를 덮치곤 한다. 하여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부모님이 안계신 관계로 매점에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도시락 싸줄께!˝ 라고 외치는 혜민이가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성현아! 밥먹자!˝

갑자기 교실에 들이닥친 혜민을 보며 나는 파산신고서를 받아든 회사직원과 같은 얼굴로 인상이 구겨졌다. 아 잠깐 빠트린것 같은데 이 녀석도 우리학교 명물에 속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2학년 최고의 포커 페이스라고 이미 학교에 정평이 나있고 근처 고등학교에까지 현립고의 누구라 하면 대부분은 알고있는 그야말로 진정한 유명인이다.

˝반가워요˝

그 옆에 갈색의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어 길게 느려뜨린 파란눈의 혼혈인인 신희가 나를 보고 웃음지으며 인사를 건냈다. 그리고 신희도 전학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내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혼혈인 고등학생을 찾으라고 해도 어지간히는 찾을수 없을 테니 그 유명세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혜민 저녀석의 유명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래야 이해할수 없는 미스테리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속에 숨겨진 거침없이 초원을 질주하는 들소만큼의 저돌성이 있다는건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북적되던 교실이 마치 모세가 ´바다야 갈라져라´라고 외친듯 나를 향해 오는 그들에게 양 옆으로 길을 내어주었다. 주위 사람은 신경도 안쓴다는 듯이 다가와서는

˝뭐야 또 혼자야? 친구도 없어?˝

그럼 넌 뭐냐 라고 외쳐주고 싶은게 내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 후의 뒷감당이 두렵기에 마음속으로만 갈무리하는 그야말로 소리없는 아우성이었다. 나는 간단히 그 녀석을 무시하고 뒤에서 종종걸을으로 다가온 신희에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 힘들지 않아?˝

내 질문에 그저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만을 살짝 보여준다. 역시 외국에서 살다와서 그런지 한국에서만 살아온 내가 이 녀석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는 것은 불가능 할 것 같다.

˝칫, 자 여기 도시락 오늘은 내가 신경좀 썻지˝

˝일단은 고맙다고 말해두지.˝

딱히 음식 맛을 기대하진 않는다. 이녀석의 음식 솜씨에 가장 많이 희생된 사람은 나일테니. 분홍색 손수건을 풀고 동물 친구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이 새겨진 뚜껑을 열고 나는 과연 먹어도 될만한 물체인가를 유심히 살폈다. 과거의 경험으로 쌓아진 내 나름대로 음식의 평가등급으로 보았을때 이 녀석은 F였다. 현재는 조금은 음식솜씨가 나아져서 D~E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하지만 모양만은 그런대로 괜찮아도 옛말은 틀린게 없다는걸 몇번이고 실감시켜준것이 바로 이 녀석이다. 일단 이 도시락은 이 녀석치곤 의외로 C등급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웃기지마!´라고 간단히 무시하거나 화를 낼게 뻔하니 늘 속으로만 하는 평가였다.

˝뭐해? 못먹을것 처럼 바라보네? 내가 무려 30분동안 공들여서 만든거야! 얼른먹어.˝

네네. 어련하시겠습니까. 계란말이, 소스가 뿌려진 문어모양 소세지, 통조림 옥수수 그리고 밥. 특별하다고 할것까지는 없는 메뉴지만 상당히 내 눈에 거슬리는건 하트모양으로 담아진 밥이었다. 거기에 마치 인테리어를 하듯 반찬을 이곳저곳 밥 둘레에 장식해 놓았다.

˝예쁘지. 내가 정말 신경 썻어.˝

˝예쁘네요.˝

그런 신경은 이젠 충분하답니다. 옆에서 신희가 나를 놀리듯 다시 입을 가리고 살짝웃으며 애기했다. 어이 웃지말라고. 주위의 녀석들은 내가 이런 유명인들과 예기를 하고 직접만든 도시락을 먹는 다고 부러운듯한 눈길을 보내는게 오히려 나를 더욱 절망의 늪으로 빠트리는 기분이다.

˝다,다음부턴 맨밥이라도 좋으니까 이런거 하지마˝

˝왜?˝

사탕을 빼앗긴 5살 먹은 꼬마아이처럼 끈질기게 왜라고 물어보는 녀석을 한쪽에 제쳐두고 나는 허겁지겁 밥을 먹어치웠다. 빨리 먹어야만 이 녀석이 돌아가는 시간도 빨리 올테니까. 밥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도와준걸 도시락통에 담기만 했을게 뻔했지만 최대한 내가 만들수 있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고마워, 잠시만 더 부탁하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알았는데, 징그럽게 웃지마!˝

˝풋˝

라고 간단히 내 진심을 징그러운것으로 추락시켜버렸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이 녀석과 알게 된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만날때 마다 마치 삭발한 프로 운동선수의 머리 뒤쪽의 혈관처럼 눈에 띨것만 같은 팽창력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상대이다. 이러다 빨리 죽는거 아닌가 몰라. 내가 그 징그러운 미소에서 서서히 눈썹이 올라가기 시작했을때 혜민은 얼른 신희의 손목을 잡고 교실문을 이미 빠져나가고 있었다. 신희는 나를 보며 원래의 웃음이 그런건지 다시 살짝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집에 갈때 만날 텐데. 두고봐라. 여자가 한을 가지면 서리가 오지만 남자가 한을 가지면 날벼락이 온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밥을 먹어서 그런지 두뇌활동이 극도로 줄어들어 나는 조금식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문득 창 밖을 보니 둥글둥글한 구름이 양떼처럼 평화롭게 흘러가고 운동장에선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하나 둘 하는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내게 들려왔다. 그리곤 서서히 내 한쪽 눈도 감기기 시작 했다. 얼핏 운동장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나는 책상에 엎어져 버렸다.









눈을 뜨니 이미 6교시가 시작중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일어나자 곁눈질로 가끔 째려만 보았고 일절 다른 말은 하지않았다. 수업시간에 졸아서 걸린 애들은 이미 뒤에 나가서 서있거나 자리에 일어서 있었고 그들도 가끔 나를 힐끔힐끔 쳐다만 보았다. 아마 그들에겐 내가 그다지 유쾌한 존재는 아닐것이다. 모두가 내게 그러는건 아니지만 학기초에 나는 완전히 반에서 고립되었다. 한마디로 왕따였다. 특히 나와 관계된 녀석들의 친구들인 반 애들이 조금 심하다면 심할정도로 나를 대했다. 내가 원한 결과는 아니지만 그다지 불편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같이 앉게되어 쩔쩔메고 있는 이 소심한 짝궁에게 미안해질 지경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내게는 하등 잘못도 없지만 연대책임이랄까? 뭐 그럼 감정으로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이 반에 처음 왔을 때와는 많이 나아진 상황이라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찾으려면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보통 학생이었다. 공부만큼은 부모님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일부러 비싼 사립에 보내려는 부모님에게 반대하고 나는 근처의 가장 좋은 공립고교인 현립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어려서 조기 교육이다 영재 교육이다 하는 그런걸 수없이 받아와서인지 입학하는 것은 내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여기서 보통이란 친구들과 어울리며, 뛰놀고 야자시간에 도망도 치고 공부는 조금 뒷전인 그런 보통이다. 하여튼 일의 발단은 1학년 2학기 중반정도였다.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보통 학생답게 시험에 대한 걱정은 마지막 시험종소리와 함께 이미 깊은 곳으로 묻어두고 나와 친구들은 학교근처 PC방으로 달렸다. 이 시간은 우리학교 모든 보통 학생에겐 시간이 생명이다. 늦게 가면 PC방 자리게 가득 차기 때문에 매점에서 거친 파도를 뚫고 건져올릴 빵과 라면을 사러가는것 처럼 우리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문제는 신호등, 그리고 우리의 아직은 미숙한 생각이었다. 신호등 앞엔 다른 학교 보통학생들도 있었고 그것이 촉매가 되어 우리는 골인을 눈앞에두고 경쟁을 하는 2명의 마라토너처럼 질주를 했다. 운좋게 우리중 대부분이 신호등 건너에 먼저 도착했지만 서로 밀치고 달리는 동안 몇몇이 찻길 가운데 엎어져서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었다. 무사히 건너긴 했지만 엎어진 애들끼리 사소한 시비가 일어났고 나머지 애들이 끼어들면서 휘발유를 뿌린 불꽃처럼 모든것에 번져버렸다. 이미 것잡을수 없을 만큼 분위기는 흉악해 졌고 마침내는 주먹이 휘둘러졌다. 누가 주먹을 날렸는지 몰라도 나도 얼굴을 맞았고 그때까지 말리려던 날 이성에서 해방시켰다. 그 후로 미친듯 주먹을 휘두르다 보니 지쳐 나는 무릎에 손을 언고 숨을 골랐다. 그때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녀석의 나이키 에어 시리즈중 하나인 신발이 내게 다가왔다. 힘이 빠져 쉬고있는데 더구나 그 비싼 신발이 나를 덮치니 나는 저항할 사이도 없이 찻길에 쓰러져 버렸다. 이때까지 아이들은 싸움에 열중했기에 누구도 내가 찻길에 쓰러진줄 알아차리지 못했고 나도 그저 것어차인 고통만을 느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뒤로 넘어지는 순간 다가오던 검은색 승용차가 나를 덮쳐버렸다. 이루 말할수 없는 충격이 내몸에 강타했지만 한 순간이었고 그 이후 모든 감각이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편안하기까지한 기분이들었다. 다만 영화의 슬로모션처럼 너무나도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만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눈을 감기전 마지막으로 느낀것은 자유로움 이었다. 나는 어디든지 날아갈수 있을듯한 기분과 한없이 넓고 푸른 하늘만이 내 마음과 두눈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고 결국엔 칠흑같은 밤이 찾아 온것을 느꼈다. 내가 다시 눈을 뜬것은 놀랍게도 3개월 뒤라고 한다. 눈을 뜨고 본건 허둥지둥 움직이는 하얀옷의 사람들과(병원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마치 테이프가 꼬여버린 라디오 소리같은 느릿한 음성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난 내 상태를 깨닫고 절망했다. 왼쪽 눈은 실명되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후로 멍하니 특실 병실에서 창밖만을 바라보았다. 나는 말이 줄어들었고 음식도 거부했다. 자의던 병이던 먹는 즉시 나는 모든걸 토하거나 오히려 내 상태만을 악화시켰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시야속에서 나는 그 순간의 자유로운 하늘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때의 나른함과 같은 육체이상의 정신을 가지고 싶었고 어떤 때보다 높고 찬란했던 하늘을 다시 되찾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병실에서 보는 창을 넘어 내 오른쪽눈에 맺힌것은 칙칙함으로 가득한 하늘이 사라져버린 하늘이었다. 다만 해가 뜨는 곳만은 그 순간과 같은 찬람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할수 없지만 나는 기회가 있다면 늘 창문으로 뛰어내릴려 했다고 한다. 지금의 나에겐 심장이 벌렁벌렁한 일이다. 아마 그렇게 하면 다시 그 기분을 느낄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서 였다고 생각한다. 그후로 어머닌 미친듯이 우셨고 오히려 그게 내 처지를 더 깨닫게 해주는 거 같아서 나는 말 그대로 안으로 안으로만 침전해 갔다. 그때 내게 다가온 사람이 혜민 이 녀석이었고 이때부터 나는 조금씩 채워져 갔다. 그 녀석의 성격이 내게 자극이 되었는지 오기가 생겼고 재활훈련에 임하게 되었다. 말이 재활이지 거의 고문에 가까운게 환자의 재활치료이다. 근육은 이미 굳어 마치 뻗뻗한 관절의 로봇과도 같은 움직임 처럼 딱딱하기만 했다. 뭐 일단 마음이 생기면 그후 따라 오는건 몸이라 다행히 한달을 조금 넘기곤 일상 생활을 할 만큼 움직일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성장판들은 다행히 다치지 않았고 성인에 비해 몸이 유연한 근육으로 되있어서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고 한다. 지금도 한달에 2번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지만 내가 보통 사람보다 이상한 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고전처럼 마음대로 움직일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후유증없이 움직일수 있게 되자 나는 학교에 보내달라고 떼를 썻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몸이 약한 소녀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수 있을 만큼 나는 외로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다시 한번의 절망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나름대로 지역 사회 아니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사람인게 문제였다. 이미 새 학년이 시작되 나는 마치 편입생처럼 어눌하게 지냈다. 당연히 나는 내가 치료받을 때 한번도 찾아오지 않은 친구들을 찾아가서 골려줄 마음으로 이반 저반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몇칠이 지나도록 친구들중 그 누구도 얼굴을 보지 못했고 다른 반에서 조차 알지 못한다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반 아이들이나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기계같은 냉정한 말투로 ˝니 부모에게 물어봐˝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나는 그날 학교가 끝나자 마자 집에가 자초지정을 물었다. 위에서 말했듯 우리 아버지는 나름대로 권력이란 것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지인들도 많이 알고 계시며 직업상 또는 사적인 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다. 이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일까? 아버지는 내 사고에 관계된 아이들 모두를 다른 학교로 전학보내거나 심하게는 퇴학처분을 받도록 한것이다. 그 당시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평소엔 볼수 없는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고 한다. 교내에 리무진이 몇대나 들어와서 검정색일색의 아버지와 교육청, 경찰, 국회의원 같은 아버지의 지인들이 몰려와 군사정변의 쿠테타처럼 교장실에 난입했다고 한다. 평소엔 무뚝뚝하고 차가운 아버지도 이때만큼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 아버지의 화난 모습은 정말로 거역할수 없는 위엄이 나오는 스타일이시다. 아버진 조목조목 법과 학교규정 그리고 여러 법조계에 몸을 담고있는 분들의 위협비슷한 이유를 바탕으로 대부분이 퇴학이나 전학을 가도록 처벌받도록 결정을 내리셨다. 당연히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한대모여 사정도하고 빌기도 하고 학교앞에서 시위도 하고 결국엔 민사소송까지 걸었지만 아버진 그런건 간단히 무시해버리고는 일체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셨다. 이것을 듣고나서야 나는 처음 학교에 나갔을때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시선을 이해할수 있었다. 아마 부모잘만나 거칠것 없이 살아가는 재수없는 자식이라고 생각했겠지. 한동안 나도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해봤다. 주위의 대화에 참여도하고 옆에있는 사람에게 말도 걸고 같이 운동도 하고. 대부분이 나를 멀리하거나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는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말을 걸면 사회에서 만난 상관처럼 뭐 하나라도 잘못했다간 목가지라는 듯이 빌빌거리거나, 한겨울의 매섭고 차가운 어투와 불쾌하다는 감정으로 짧게 그래. 응 이라고만 대답해줄 뿐이었다. ´이 녀석에게 해를 끼치면 나도 그녀석들처럼 되겠지?´라는 생각이 나를 대하는 그들의 바닥에 깔려있었다. 노력할수록 나는 더욱 비참할질 뿐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어둠과 시야를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의 하늘을 다시는 찾을수 없다는 것도. 하지만 이 때도 내게 맨 처음 다가온 사람은 그 녀석이었다. 처음엔 동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 태도는 아마 상종하기도 싫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수는 자가 있다면 역시 만드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부수면 부술수록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따듯하고 포근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는것을 나는 지금도 감사한다. 더구나 그녀석은 학교의 스타였다. 그러니 자연히 주위엔 사람이 모여들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중 일부는 나에대한 그림에 바탕을 다시 칠해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래서 지금 나는 그때와 같은 하늘을 가질수는 없지만 이전과는 다른 보랏빛 찬란한 어둠과 공존하는 하늘을 볼수 있는 보통 학생이다.